"난 고정된 사고를 하는 사람과 충돌할 뿐"

2007. 3. 23. 20:31Interest/ⓔ Story

"난 고정된 사고를 하는 사람과 충돌할 뿐"

[중앙일보 배영대.백성호.조문규] "나는 고정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충돌할 뿐입니다. "

도올 김용옥(59) 세명대 석좌교수가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이번엔 '기독교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라는 두 책을 최근 잇따라 펴내며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미 '도올 논어'(2000).'금강경 강해'(1999).'노자와 21세기'(1999)등 저서를 내놓을 때마다 유불도(儒佛道) 3교 인사들과 경전 해석을 놓고 마찰을 일으켰다.

이번 갈등도 그같은 '경전 해석 논쟁'의 연장선 위에 있다.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는 한국교육방송(EBS)이 2월 6일부터 개설한 '인터넷강좌-도올의 영어원전강독'의 교재로 만들었다.

도올은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데올로기의 내용과 관계없이 자신만 선이라며 어느 한 축을 고집하는 이들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런 충돌을 통해 '자기 부정'을 경험해 왔다고 했다.

"자기부정은 곧 양보예요. 내가 요한복음을 강의한다고 해서 기독교의 대단한 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논의를 유발하기 위한 자극제를 던진 것일 뿐입니다.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계발과 변화를 추구해온 사람이 있음을 보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용기를 얻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

다음은 기독교계와의 논란을 주제로 나눈 일문일답.

-'구약성경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고 있다.

"단 한번도 그렇게 얘기한 적 없다. '구약 폐기론'을 도올이 주장했다는 주장은 폐기돼야 한다. 구약을 왜 폐기하나. 엄연한
유대교 경전이다. 그런데 구약.신약 할 때의 '약'은 계약이다. 구약은 헌 계약이다. 헌 계약을 갱신하고 새 계약을 만들었으면 새 계약을 따라야 한다. 이는 나만의 특별한 주장이 아니다. 신학대 커리큘럼에 다 들어 있는 일종의 상식이다. 구약은 신약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서로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구약은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에게 신앙의 대상일 수 없다. 이에 반기를 들면 그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초대교회의 역사적 정황을 치밀하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역사적 정황을 강조하는 이유는.

"모든 종교의 경전은 믿음의 대상이기만 했지, 이해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경전이 탄생한 문명의 총체적 모습을 보지 않고선 그 경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어떤 경전이든 그것이 쓰인 구체적 상황이 있다. 모든 책은 인간의 손으로 쓴 것이다. 성서도 성령을 받아서 쓰였음을 100%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손으로 쓴 것임에는 틀림없다. "

-종교에서는 신비주의 영역을 존중해야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이성과 신앙, 합리적 사고와 신비적 사고, 이런 걸 대립적으로 본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똑같은 정신적 행위다. 그걸 대립적으로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선 이성의 극한까지 가야 한다. "

-두 권의 기독교 저서를 통해 "성서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무슨 뜻인가.

"기독교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무수한 논쟁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빙자하며 선량한 사람들을 등치는 사교(邪敎)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모든 기독교 논쟁의 기준이 성서여야 한다는 뜻이다. 성서 중에서도 예수의 말씀이 중심이 된 신약의 복음서 위주여야 한다. 교회의 이권에 의해 생겨난 담론들을 마치 성서처럼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 것이다. "

-종교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인간은 뭔가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걸 하나님이라고 하든, 열반이라고 하든, 그런 초월적 존재 앞에서 인간은 겸손을 배우게 된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가장 큰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독교는 로마 황제의 공인을 받은 이후 인류 역사에서 너무 많은 증오를 가르쳐 왔다. 수많은 전쟁이 종교로 인해 일어났다. 기독교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증오를 뿌려선 안 된다. "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를 완전히 희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지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시시콜콜 이유를 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내 몸을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탕자가 돌아오면 아무런 이유도 붙이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독교는 가르친다.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자는 나를 따를 수 없다'고 한 것처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거다. "

-한국 기독교계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가.

"좀 더 유연하고 폭넓은 자세로 우리나라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했으면 한다. 남북관계에서도 기독교가 또 하나의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불러올 가능성을 제공해선 안 된다. 종교 조직은 정치와 역사를 리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는 역사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포용하고 치유하는 것만으로도 결국 역사를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직 한국 기독교엔 희망이 있다. 비판받길 두려워해선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 인간 세계의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해야한다. "

-기독교의 본질을 정치적
해방신학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예수는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정치적 독립보다 인간이 율법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보이지 않는 정신적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중요한 해방으로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신학이 한때 유행했으나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함께 막을 내렸다. 구한말 조선인들이 기독교를 왜 그토록 사랑했는지를 생각해보라. 유교(儒敎)가 율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교의 율법에 찌든 아녀자들에게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그야말로 기쁜 소식(복음)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것은 바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얘기다. 요즘의 민주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많은 율법에 의해 우리는 얽매어 있다. "

-종교와 철학은 어떤 관계인가.

"종교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철학이 필요하고, 철학을 이해하는 데도 철학의 배경에 종교적 맥락이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세기 들어서 과학적 세계관이 세계를 휩쓸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과학적 세계관이 발생하기 이전의 틀을 갖추고 있다.
헬레니즘 배경에서 쓰인 언어들을 문자 그대로 믿으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21세기는 철학과 종교가 서로 도와야 하는 시대다. 과학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 "

글=배영대.백성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도올 김용옥은

저술 50여권 … '차이에 대한 관용'역설해 와

1986년 군부독재에 항거해 고려대 철학과 교수직을 스스로 사퇴한 이후 도올의 삶은 언뜻 좌충우돌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50여권의 저술과 각종 대중 강연을 통해 '철학의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관용'을 역설해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자신의 삶에선 '차이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충돌은 대부분 유불도(儒佛道) 3교의 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의 기독교 저술로 인한 갈등으로 유불도에 이어 기독교까지 모두 4교를 섭렵하며 마찰을 일으키는 독특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온갖 갈등의 복판에 있으면서도 그의 움직임은 유연하다. 유불도 분야를 한바탕 흔들어 놓은 과정이 그랬듯이, 기독교계에 이어 곧 또 다른 장르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장르 이동'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인가. 종교 분야뿐이 아니다. 그는 한의대를 마친 한의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연극.영화.가요.다큐멘터리 제작과 공연 현장에 참여한 데 이어 논술강좌까지 했다.

"필생의 과업인 '한국 사상사'를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습니다. 한의학.종교.영화 등 나의 학문적 편력을 그 안에 녹여낼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다양한 경험은 나의 '기(氣)
철학적 인간학'을 완성하기 위한 학문적 여정이었습니다. 단순히 산발적인 관심의 표출이 아닙니다. 나의 인간학의 완성이 우리 민족 사상사의 완성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

그에겐 '학위 수집가'란 별명도 있다. 고려대를 거쳐 타이완대와 도쿄대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80년대 초 '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펴내며 동양학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